벽산서원
안동 벽산서원에 왔다. 도산서원도 아니고 웬 뜬금없는 벽산서원이냐 묻지 말길 바란다. 회사 워크샵 프로그램의 일롼이니까. 엉망진창 맞춤법도 이해 바란다. 비포장 길이라 몹시 흔들린다

옛 건축 전문가인 교수님을 불러 들어가며 보는 프로그램은 처음이다. 유흥준 교수의 우리문화답사기에 종종 나오는 일반인 대상 답사 프로그램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벽산과 도산이길래 벽산 무슨 선생이 있었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서원 앞 산이름이 벽산이란다. 이런 싱거울데가. 서원은 유명한 성리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며 동시에 교육을 담당하는 기능을 하는데 나라에서 인가를 내주었다 한다. 영정조 때 그 수가 피크에 이르렀는데 자그만치 그 수가 650 개가 넘었단다. 그 배경에는 서원에 대한 토지세 면제와 소속 노비에 대한 부역면제라는 경제적인 이유가 도사리고 있었단다. 대원군이 집권후 바로 시행한 서원철 폐에는 결국 서원에 묶여있는 재산을 풀어 세수를 확보하려는 것과 동시에 서원을 기반으로 세도 가문으로 흘러 들어가는 정치자금을 봉쇄하려는 두가지 목적이 있었단다

벽산서원은 대원군이 서원철폐 후 남겨 놓은 47개 서원 중 하나인데 당시 남겨진 서원은 대개 정치 경제적 관점에서 별 볼일 없던 것이 대부분이고 도산서원과 같은 대형 정통서원들이 또 한 무리라던데 벽산 서원이 어느 쪽에 속하는지는 못 물어 보았다.

본론은 이게 아닌데 배경 설명이 길었다. 벽산서원의 문을 들어서면 공중에 떠 있는 양 일곱 기둥위에 서 있는 길다란 누각이 있고 그 뒤로 본 건물이 보이는데 이 곳이 교육장이란다. 교육장과 누각 사이에는 크지 않은 마당이 있어 앉은뱅이 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고 마당 양쪽에 각기 조그만 건물이 두 채 있는데 이 곳은 교육생의 기숙사란다.

강의실 한복판인 원장선생 자리에서 밖을 향하면 누각을 기준으로 누각위로는 산세와 하늘이 보이고 누각사이로는 흐르는 강물이 보이고 누각 밑으로는 지나 다니는 사람이 보인다. 이러한 공간 배치는 우연이 아니라 디자인을 통한 인위인데 이를 통해 천지인을 구분하고 벽산의 벽이 병풍의 의미라는데 누각이 일곱기둥 일곱폭으로 되어 있는 것은 마치 누각을 통하여 벽산을 병풍안에 품으려는 시도라고 한다

선조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놓고 감상만 했다고 생각 할 수 있으나 실상은 건축믈을 통해 자연의 미를 극대화 하여 즐겼다고 하니 기본 자세는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겠다. 
서양의 건축물이 밖에서 안을 지향했다면 동양의 (최소한 한국의 건축물은) 안에서 밖을 지향했다고 하겠다. 또한 약으로 치자면 서양의 그것은 자연과 건축물이 각각 단일요법으로 대립하는것과는 달리 우리의 그것은 병용요법으로 합쳐서 어우러짐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떤 작품이 날것으로 있을때와 액자에 끼어 있을때 달라 보이는 것 처럼 우리에 있어 건축물이란 자연의 미를 극대화하는 일종의 프레임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또하나 재미있는 점은 우리 선조들은 좁아터져 삐져나올 것 같더라도 여유공간은 포기 않았다는 점이다. 하급생의 기숙사인 서재는 보통 10 명 이상이 한방을 같이 썼다는데 그래도 마루가 있고 툇마루가 있다.

(PS) 벽산서원에서 부석사로 옮기는 버스에서 아이팟으로 쓴 글이다. 키보드가 익숙치 않아 나중에 맞춤법 고치는 데 글 쓰는 만큼 시간이 들었고, 웬지 글이 쓰다 중간에 그만 둔 것 같이 마무리가 상큼하지 않다. 이해하라.


by jjay | 2009/07/19 11:2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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